근심과 걱정을 더는 해우재 길

이원형|해우재 관장

배나무골(이목리)의 아련한 추억

30여년 전만해도 수원의 데이트 명소라면 서쪽으로는 봄날 딸기밭의 푸른 지대, 동쪽은 한여름 조각배를 타던 원천유원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가을이면 포도와 함께 은은한 솔잎의 향이 퍼져나던 노송지대를 꼽을 수 있었다.

대학 2학년 봄, 신입생 후배가 자기 집에 한번 같이 놀러 가자고 해서 안양 가는 버스를 타고 노송지대 정류장에서 내렸다. 소나무 향을 뒤로하고 사랫길로 한참이나 걸어서 수원의 북쪽 맨 끝자락에 위치한 후배의 집을 방문하였다.

배나무가 많아 동네 이름이 배나무골, 이목리라 불리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나는 여기서 아명이 개똥이였다는 후배의 아버지인 심재덕이라는 분을 처음 만났다.

그 후 20년이 흘러 그 날의 인연으로 ‘모든 인류가 화장실에서 나올 때 미소를 짓는 것이 나의 꿈 입니다’ 라며 세계 화장실문화운동을 이끌었던 그 분의 열정적인 이상에 동참하게 되었다.

수원의 개똥이가 만든 새로운 세계문화

수원의 북쪽 경계인 지지대고개에서 수원화성으로 가는 정조대왕의 능행길을 지나가다 만나는 노송지대를 조금 벗어나면 수원의 새로운 브랜드로 떠오르고 있는 수원시 화장실문화 전시관 ‘해우재’를 만날 수 있다.

해우재는 뒷간에서 태어나 출생부터 화장실과 운명적인 인연을 지녔던 세계 화장실문화운동의 선구자로 화장실문화운동에 모든 열정을 다하고 살다간 ‘미스터토일렛 (Mr. Toilet) 심재덕’(1939.1.15.~2009.1.14.) 전 수원시장이 살던 집이었다.

더럽고 냄새나서 모든 사람들이 코 막고 외면하던 화장실! 그러했던 화장실이 지금은 수원의 대표 관광 상품이 되었다. 또한 해우재는 수원시티투어의 첫 번째 코스로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1960년대까지 흔히 부르던 뒷간과 변소는 집의 외진 곳, 또는 대문 밖 멀리 두고 있었으나 1970~80년대 들어와 양옥과 아파트 등 주거 시설이 현대적으로 개선되면서 똥, 오줌을 배설하는 공간에서 몸도 씻고 화장도 하는 ‘화장실’이라는 밝고 우아한 느낌을 주는 명칭으로 불리며 인간생활의 가장 밀접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처갓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지금에 와서는 ‘처가와 화장실은 가까울수록 좋다’라는 말로 역설적으로 바뀌었다.

레미제라블의 작가인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인간의 역사는 곧 화장실의 역사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화장실은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함께 발전하여 왔던 불가분의 생활공간인 것이다.

문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청결한 화장실을 가지고 있으며 위생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화장실이 깨끗하고 위생적이면 된다는 단순한 개념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그림이 있고 꽃향기가 나는 삶의 휴식과 명상을 즐기는 인간 생활의 중심 공간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다. 이렇듯 화장실이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은 세계 화장실문화운동의 메카 ‘해우재‘에서 출발했다.

버림의 미학, 세상의 근심과 걱정을 덜다

의왕시에서 1번 국도를 타고 지지대고개를 지나 우측 성균관대역으로 방향을 틀어 600m를 가면 이목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다시 우측방향 동원고로 내려서면 도심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한적함을 느끼며 300m를 유유자적 10여분 걸어가면 해우재를 만날 수 있다.

이곳 해우재에는 수원의 화장실문화를 소개한 전시관과 어린이체험관, 교육·세미나실, 전망대 등을 갖춘 문화센터가 있으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화장실 변천사를 보여주는 모형이 설치된 야외공원이 있다.

신라시대 귀족 여인들이 사용했던 노둣돌은 우리 민족이 이미 오래 전에 수세식 변기를 사용했음을 보여주고 백제시대 왕궁리 화장실 모형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화장실을 소개하고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집안에서 사용하던 요강은 공원 곳곳의 장식물 역할을 한다. 짚으로 엮은 뒷간이 지역별 특색대로 재현됐고 제주도에서 인분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돼지를 기르던 통시변소는 제주도 화산석으로 지어졌다.

공원 곳곳에는 용변을 보는 어른, 아이의 모형이 사실적으로 표현됐다. 어른과 아이 4명이 한자리에 앉아 용변을 보고 있고 옆에는 오줌 싼 아이가 키를 쓰고 울고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용변을 보게 하는 장면이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공원 통로에는 발에 밟힌 용변이 사실적으로 설치돼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저기 똥과 화장실을 주제로 한 벽화와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화장실 변천과 해학적이고 독특하고 재미있는 조형물로 채워진 해우재에서 뛰어 노는 어린아이들이 “똥, 똥!” 하며깔깔대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추억을 기억하는 이들로 하여금 바쁜 일상에서 잃어버린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의학적으로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이 몸속에서 1박 2일간 여행을 하다가 항문으로 나오게 되는데 사람이 입으로 먹고 뒤로 싸지 못한다면 얼마나 고통일까? 들어간 것이 있으면 반드시 나오는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세상사이거늘……

탐욕과 오만을 버리는 것이 곧 근심과 걱정을 던다는 것이라는 해우재의 진정한 메시지, ‘버림의 미학’ 인 것이다.

세계로 미래로 가는 길

지금도 화장실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인류의 40%에 육박한다고 한다. 화장실이 없어 전염병에 노출되고 식수가 오염되어 먹을 물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병이 들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생활이 힘들어지고, 먹을 물을 사려고 수입의 상당수를 소비하느라 가난이 반복된다. 이는 세계적인 빈곤문제가 화장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이러한 나라에 식량을 원조하고 식수를 지원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화장실을 지어주고 개선해 주는 일이다. 화장실 문제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지구촌 공통문제라는 것을 모두 깨달았으면 한다. 화장실은 위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과 끝이며 인간생활의 존엄과 보편적 권리를 갖는 공간으로서 배려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 진정한 ‘해우재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