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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토일렛 심재덕

주요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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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함께 수원의 미래를 설계하다

수원지역 국회의원과 행정가들이 도심교통난의 해결책이라는 명분으로 수원천의 복개를 주장했을 때, 당시 문화원장으로 재직했던 심재덕은 환경을 취약하게 하고 시민생활을 각박하게 한다고 반대했다. 시장 취임 후 심재덕은 복개가 진행되는 것을 중지시키면서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서식하는 생태하천으로 수원천을 변화시켰다. 결국 당시에는 영동시장 주변 일부 구간에 복개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민선시기 시장으로 재임하며 광교산에서 세류동에 이르는 구간까지 생태하천으로 개발했다. 수원천은 시민들의 산책활동은 물론 어린이들에게는 여름철에 물놀이 공간으로 겨울에는 썰매를 즐기는 놀이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변모한 수원천은 청계천의 모델이 되었다.

한편 심재덕은 시민들과의 솔직한 대화와 설득을 통해 큰 마찰 없이 3대 혐오시설 건설을 잡음 없이 추진해 낸 유례없는 단체장이었다. 전국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화장장을 건설하였고, 쓰레기 소각장과 수원천 하류의 하수종말처리장을 차질 없이 건설해냈다. 특히 인구 75만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인구 150만을 기준으로 쓰레기와 하수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추진함으로써,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선진 행정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수원화성, 세계로 미래로 날개를 펴다

수원문화원장 시절 당시 수원경찰서, 수원도립병원, 수원간호전문대 등이 들어선 곳이 화성행궁 터였다는 기록을 찾아내었으며 이에 행궁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행궁 복원에 나섰다.

또한 수원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수원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97년 당시 역사와 규모를 생각할 때 수원화성이 UNESCO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재가 되리라 여긴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외교부와 문화관광부 등의 관계자들도 문화재등재가 불가능함을 기정사실화하였고,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도 유네스코를 방문하는 것이 헛된 일이라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심재덕은 화성의 축조과정과 내역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와 정조대왕의 효심이 축성된 깃든 정신이었다는 고증자료를 수집정리하고,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문화재단으로 날아가 수원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한편으로는 수원시의 문화행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있던 정조대왕의 역할을 시민을 중심에 세웠다. 시민들 가운데 정조대왕과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선발하였던 것이다.

복원된 화성행궁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시연하는 등 문화와 관광의 명소로 부각되면서 한류의 주역이 된 TV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무대가 되었다.

수원의 전통을 복원하고 문화를 꽃피우고자 하였던 열정으로 일명 '문화시장' 이라는 칭호를 얻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노력과 열정이 다시 쾌거를 이룬 것이 바로 '2002 한일 월드컵' 경기를 수원에 유치한 일이었다.

당시 여건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울시를 비롯해 광역시급 이상으로 경기장을 배정한다는 정부 방침과, 서울과 인천 등의 광역시와 근접한 거리 등으로 판단해볼 때, 수원이 월드컵 경기를 유치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시장이었던 심재덕은, 월드컵 경기 유치가 수원시 발전을 가속화시킬수 있는 기회라 판단, 끈질긴 집념으로 이를 추진했다. 경기장 건설을 약속한 삼성전자가 IMF 여파로 공사를 중단한 후, 경기도와의 공동출자와 시민들의 1인 1의자 갖기 운동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경기장을 완성하였고 어느 도시보다 훌륭하게 월드컵 경기를 치러냈다.

국회의원으로 진출하여서도 수원화성을 수원발전의 원천으로 만들어내고자 '화성특별법' 을 발의하는 등 그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담장을 허물고 문호를 열다

시민들과 격이 없는 대화를 위하여 수원시청을 비롯한 수원시 주요시설물에 담장을 허물었다. 이를 통하여 시민이 중심이 되는 열린 행정에 주력하였던 것이었다.

한편 광교산을 시민들에게 연중 개방하였다. 행정에서는 산불 등의 사고를 예방한다는 미명하에 겨울철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는 평일에 1만여 명, 휴일에는 2만여 명의 수원시민과 인근지역의 등산객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행정 편의적 방침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심재덕 시장은 광교산을 과감하게 연중 개방했다. 관선시대 같았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실제로 산불걱정 때문에 실· 국장들의 반대도 많았다. 그러나 시민들의 높은 문화 수준을 믿었던 심재덕 시장의 선택을 옳았다. 자연을 사랑하는 수원시민을 믿었고 건강한 시민이 있는 곳에 건강한 시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과 소신이 바로 오늘날에도 시민과 행정이 소통하는 통로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살맛나는 수원, 하하 수원

심재덕은 '지방자치는 주민자치, 생활자치이기 때문에 기초자치단체장 선거는 정당공천이 배제되어야한다' 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소신을 바탕으로 당시 인구 1백만에 육박하던 수원시에서 무소속으로 민선1·2기 자치단체장 당선을 이루어냈다. 이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에도 '지방이 바로 서야 정치가 바로 선다.' 는 신념으로 국회 지방자치발전위원회 대표의원을 역임하면서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고 지역주민이 행복한 정치를 실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신념이 구체적으로 실천된 것이 ‘웃음이 넘치는 건강한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하하!! 水原 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 운동은 시민과 공무원간, 시민과 시민간의 의사전달의 기회를 넓히고, 궁극적으로는 상호이해의 폭을 넓혀 원만한 시정운영을 위해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자 기획된 것이었다.

세계화장실문화 혁명을 이끌다

수원시는 명실 공히 세계의 화장실문화를 선도하는 도시이며 화장실 문화혁명을 이룬 발생지가 되었다.

수원시장 재직 시, 심재덕은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 사업과 으뜸 화장실 콘테스트를 추진하면서 화장실 붐을 일으켰고, 화장실 전담부서를 설치하여 관리자와 사용자의 의식 변화에 힘썼다.

또한 1999년 한국화장실협회를 창립하여 화장실문화운동을 주도하였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중화장실법을 갖게 된 나라로서 세계를 선도하였다. 2007년 11월, 화장실을 통해 인류 보건을 증진시키는 국제기구인 세계화장실협회를 창립하였다. 당시 자신의 집을 변기모양으로 신출하면서 세계인들에게 화장실문화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감동받은 세계의 언론이 그에게 부여한 자랑스런 칭호가 Mr. Toilet인 것이다.

화장실을 배설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휴식과 명상을 위한 공간으로 변화시키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화장실 문화운동도 전개하였다. 현재 인류는 전 세계 인구의 40%인 26억명이 화장실 없이 생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연간 200만 명이 수인성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특히 어린이와 여성들의 사망이 많다. 빈곤과 영양실조에 지친 개발도상국가의 어린이들은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전염병으로 1분에 4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그러니 화장실은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성소다. 그러므로 화장실 혁명이 인류 미래를 바꾼다.”는 것이 Mr. Toilet 심재덕의 의지요 신념이었던 것이다.